효창공원 (사적제330호, 1989, 6. 8 지정)
효창동과 청파2동에 자리한 총 면적 3만6천979평의 효창공원은 1989년에 사적 제330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장소로 예전에는 효창원 경내였습니다. 효창원은 조선 정조의 장자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문효세자의 묘원입니다.
묘역이 넓고 송림이 울창했던 이 곳에는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생모이기도 한 의빈 성씨의 묘,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의 묘와 그의 딸인 영온옹주의 묘가 같이 있었으나 묘들은 해방을 전후해 서오능으로 이장 되었습니다.
효창원이 일반인의 유람지로 허용되기 시작한 때는 일제때인 1924년 경성부가 효창원의 일부를 공원용지로 책정, 순환도로와 공중변소 등 약간의 설비를 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다 정식 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40년 총독부고시 제208호에 의해서입니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일제 때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와 백범 김구, 그리고 임시정부요인인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선생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효창운동장 맞은 편에 있는 효창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30m 되는 곳에 임시정부요인 묘소가 있고 북쪽으로 30m 쯤 올라가면 삼의사묘가 바로 눈에 보입니다. 이 삼의사묘터는 이봉창의사 동상이 들어서 효창공원에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을 보듬게 됐습니다. 또한 의열사에는 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7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이에 용산구는 매년 의열사 제전 개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의열사 담장 바깥쪽으로 이봉창 의사의 동상이 자리하여, 용산에서 나고 자란 의사의 애국정신을 전하고 있으며, 용산구는 이곳을 시민들이 편안한 휴식공간이자 민족정기가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가꾸기 위해 성역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신학교 (사적 제520호, 2012년 6월 20일 지정)
용산신학교는 189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감독했다. 용산신학교는 반지하1층, 지상2층의 벽돌 건물로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며, 중앙에 현관과 지하층 출입구를 두고 좌우에 1층 현관에 이르는 계단을 설치했다. 오늘날의 용산신학교는 학교가 혜화동으로 이전하여 성모병원분원으로 사용하다가, 성심회에서 수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래의 건물 일부에 증축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용산신학교는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건물로서, 매우 중요한 건축사적 의의를 갖는다.
(원효로4가 1-1)
서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사적 제521호, 2012년 6월 20일 지정)
원효로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감독했다. 원효로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수녀 원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예배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형식 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위의 작은 뾰족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의 모습을 이루도 있다.원효로성당은 19세기 말의 성당 건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사적 의의를 갖는다.
(원효로4가 1-1)
서울성곽
서울 성곽은 조선태조가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여 한양 방위를 위해 태조4년(1395년) "도성도축도감"을 설치하고 팔도 인원20만명을 동원하여 축성한 둘레17Km에 달하는 도성입니다. 돌과 흙으로 축조된 성곽은 짧은 기간에 축성한 탓에 부실한 곳이 많아 세종4년(1442년)에 약32만의 인원을 동원, 장방형 마름돌을 사용하여 전면개축하였습니다. 성곽은 조상들의 유비무환의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호국문화유산입니다. (후암동 267번지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