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동별위치. (1)한남동, (2)이태원2동, (3)이태원1동, (4)보광동, (5)후암동, (6)용산2가동, (7)서빙고동, (8)남영동, (9)한강로동, (10)이촌1동, (11)이촌2동, (12)청파동, (13)원효로1동, (14)원효로2동, (15)효창동, (16)용문동한남동 이태원2동 이태원1동 보광동 후암동 용산2가동 서빙고동 남영동 한강로동 이촌1동 이촌2동 청파동 원효로1동 원효로2동 효창동 용문동

산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1896년 4월 17일 한성부 용산방으로 시발되었으며, 광복후인 1945년 10월에 용산구역소의 명칭이 용산구로 개칭되었으며, 1946년 10월 18일부터 [서울 특별시 용산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제의 실시는 1955년 4월 시조례에 의거 종전의 동회를 행정동으로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효로1동

원효로라는 명칭은 통일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 원효대사가 배편을 이용하기 위해 원효로를 거쳤거나 육로로 요동까지 왕복길에 들렀는지 북한산 등 강북의 명산을 돌아보는 길에 들렀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이 지역이 교통상이나 거주지역으로 활동 장소였음을 의미한다. 이 일대는 1946년 10월 1일 원효로 1·2·3·4가, 신창동, 청암동, 산청동으로 바뀌게 되었다가 1970년 5.18 동제 개편에 따라 원효로1가·2가는 원효로1동에, 산천·청암·신창동과 원효로3·4가는 원효로2동에 속하게 되었다.
 

원효로1가

조선중기부터 한성부 서부 성외지역이었으며 영조 27년(1751)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 청파4계로 불리던 곳으로 갑오개혁후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서서 용산방 청파4계가 되었으며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용산면 청파 4계·하마비계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 고시 제7호로 경성부 원정 1정목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를 실시할 때 용산구 원정 1정목이 되었다. 광복후 1946년 10월 1일, 용산구 원효로1가로 지정되었다. 1955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자치동제 실시에 의해 원효로2가 동회와 합쳐져 원효로제1동으로 불렀다.

원효로2가

조선중기까지 한성부 서부 성외 지역이었으며, 영조 27년(1751)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 동문외계의 일부였는데 군자감의 동문 밖에 위치한데서 연유되었다. 동문외계는 지금의 원효로2,3가 및 신창동 일부까지 걸쳤던 곳으로 매우 큰 부락이었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제 98호에 의해 한성부 서서 용산방 동문외계 동문외로 칭하였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동문외로 칭했고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와 경기도 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 원정 2정목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를 실시하면서 용산구 원정2정목이 되었으며 1946년 10월 1일 원효로2가로 개칭하였다.

문배동

현재 신계동에 있는 문배산 이름을 따서 붙인 데서 유래되었고 조선초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다 영조 27년(1751) 한성부 서서 용산방 청파4계와 사거리계로 되었고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용산면 청파4계라 칭하였으며 1914년 4월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청파4계 일부를 경성부 경정으로 바꾸었다. 1946년 10월 1일 용산구 문배동이 되었다.

신계동

조선중기까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으며 영조27년(1751) 한성부 서부 용산방 동문외계(군자감 동문밖)이었다가 1895년 5월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서서의 용산방 동문외계의 동문외로 칭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경성부 용산면 동문외가 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해 경성부 영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구제도가 실시되면서 경성부 용산구 영정이 되었다가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신계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