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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로2동주민센터 방문을 환영합니다! 언제나 행복한 원효로2동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유래

서빙고동

반포대교 북단의 한강변에 위치한 서빙고동은 조선시대에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어 동명이 유래되었다.

서빙고(西氷庫)는 조선 태조5년(1396)에 예조에 소속된 얼음 창고로 둔지산 산기슭에 설치하여 겨울에 한강물이 4촌(寸)이상 얼었을 때 채취하여 저장하였다. 빙고의 얼음은 매년 음력 3월∼9월까지 궁중의 수라간에 바치거나 고위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곳에는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움집의 빙고 8동(棟)이 있었는데 서빙고가 동빙고보다 휠씬 규모가 커서 4촌 이상의 얼음 저장할 수 있었고, 얼음을 저장할때나 개빙(開氷)할 때에는 빙신(氷神)인 현명(玄冥)에게 제사를 지냈다.

서빙고가 있었던 자리는 현재 서빙고초등학교에서 서빙고파출소가 위치한 일대이며 동·서의 두 빙고는 고종 31년(1894)까지 존속하였다가 폐지되었는데 광복 이후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옛 빙고를 변형시킨 민가의 `곳집` 형태가 눈에 뜨이었다.

서빙고동 강변에서 잠실리로 건너가던 서빙고나루터는 조선시대는 물론, 6.25전쟁 때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였다. 그리고 서빙고동과 동빙고동 사이의 골짜기는 도성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서울골짜기라고 불렀으며, 이 골짜기에는 열녀문(烈女門)이 있었다고 전한다.

전 서빙고동주민센터(서빙고동 199-4) 부근에는 창회정(蒼檜亭)이 있었는데 조선초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자주 놀러 다녔던 곳이며 한명회·권남을 만나 대사를 논의하였다.

현재 서빙고동 199번지에 있는 부군당은 이 곳에서 300m 떨어진 언덕에 있었으나 80여년 전에 일제가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함에 따라 이전하게 되었다. 이 부군당은 조선 태조 내외분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서울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군당 내부에는 태조 내외분과 삼불제석(三弗帝釋)의 무신도가 있으며 5개의 현판이 있다.

동빙고동

"반포대로"의 동쪽, 한강변의 동빙고동은 조선시대에 얼음을 저장하던 창고 동쪽에 위치하여 유래된 동명이다.

동빙고는 서빙고와 인접해 있었지만 원래는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다. 이 곳으로 이전된 까닭은 조선초 연산군 10년(1504) 10월에 연산군이 옥수동 일대를 사냥터로 정했으므로 동빙고를 옮겨오게 된 것이다.

동빙고에 저장된 얼음은 국가의 여러 제사때 쓰여졌으며 그 규모는 서빙고 보다 작아서 얼음 10,244정을 보관하였다. 참고로 동빙고가 옥수동에 위치했을 때는 현재 옥수동 산 1번지에 얼음을 잘 얼게 해달라고 현명씨(玄冥氏)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한단(司寒檀)이 있었다.

동빙고동에는 말안물이란 우물과 복주물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았다. 전에는 동빙고동에서 주성동쪽으로 나루터가 있어서 한강을 건너 잠실리로 갔으며, 6.25전쟁 때만 해도 서울 시민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잠실리를 거쳐 광주방면으로 왕래하였다. 동빙고동에서 보광동으로 가는 중간지점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주성동

한강동에 작은마을인 주성동은 전에 쇠를 녹여서 무쇠솥 등을 제조하였던 데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주성동은 전일에 점말(店洞)이라고 했으며 강변 마을이므로 동작동에서 도성으로 들어오는 배가 이 곳에 닿았기 때문에 선창머리라는 마을이름과 주막이 있었던 관계로 술청거리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용산동6가

용산구의 명칭이 되기도 한 서울의 용산은 도성 서쪽 무악의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약현과 만리현을 지나서 서쪽으로 한강변을 향하여 꾸불꾸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이 든 것 같고, 또 한강변의 지금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에서는 머리를 든 것 같기도 한 것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서빙고로"북쪽의 용산동 5가·6가는 6.25전쟁 후 오랫동안 미군 골프장으로 사용해 왔는데 1992년 하반기부터 미군기지 일부가 이전함에 따라 골프장으로 서울시에 반환되었다. 서울시는 75,900㎡나 되는 이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 가족공원이라 이름하여 널리 시민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또 가족공원의 일부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재하고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이 동의 동서로는 경원선 철로와 "서빙고로", "강변대로"가 평행으로 뻗어있고 강변대로 남쪽의 고수부지에는 정구장 등이 시설된 한강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서빙고로"와 `강변대로" 사이에는 1980년대 말까지 공영사와 쌍용시멘트 회사가 건축자재등을 생산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신동아 쇼핑센터가 세워졌다. 현재 동작대교가 놓여진 곳은 조선시대의 동재기나루가 있었다.

동재기나루는 서울 장안에서 과천으로 나가는 길목으로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는데 영조 4년 (1728) 李麟佐의 난을 계기로 나루의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면서 이 나루에 별장이 파견되고 영조 22년(1746)에는 노량진 나룻배 3척을 이관하여 나룻터의 면모를 갖추었다.

동연혁

행정구역변천사

서빙고동주민센터는 서빙고동, 동빙고동, 주성동, 용산동6가 등 4개의 법정동을 담당하고 있다. 광복 후 1947년 말에는 서빙고동회가 서빙고동, 동빙고동회가 주성동 동빙고동, 그리고 1946년 5월에 용산동회가 설치되어 용산동1가∼6가까지의 행정을 맡았다가 1949년에 용산동회가 해방동회로 바뀌어 용산동1가,2·3가 일부, 4가∼6가까지의 동행정을 담당했다.

1955년 4월에 용산동 6가가 서빙고동주민센터 관내로 편입되었고, 동빙고동주민센터는 주성동과 동빙고동의 행정을 담당했다. 이어 1970년 5월에 동빙고동주민센터의 폐지로 주성동과 동빙고동 지역이 서빙고동주민센터로 편입되어 오늘과 같이 되었다.

행정구역변천사

행정구역변천사에 관한 표입니다.
구분 일자 주성동 서빙고동 동빙고동
동연혁 1751년 영조 주성리계
(鑄城里契)
서빙고2계
(西氷庫二契)
서빙고1계
(西氷庫一契)
1894년 갑오개혁 주성리계 점동
(鑄城里契 店洞)
서빙고2계(西氷庫二契)의
서빙고동(西氷庫洞)
서빙고1계(西氷庫一契)의
서빙고동(西氷庫洞)
1914 4. 1
(경기도 고시제7호)
주성리(鑄城里) 동빙고리(東氷庫里) 서빙고리(西氷庫里)
1936. 4. 1 주성정(鑄城町) 동빙고정(東氷庫町) 서빙고정(西氷庫町)
1946. 10 주성동(鑄城洞) 동빙고동(東氷庫洞) 서빙고동(西氷庫洞)
관할구역
변천현황
1947년말 동빙고동회가 관할 서빙고동회가 관할
1955. 4. 18
(시조례 제66호)
동빙고동주민센터가 관할 서빙고동주민센터가 관할
(용산동6가 관할)
1970. 5. 18
(시조례 제613호)
동빙고동주민센터 폐지로 서빙고동주민센터가 현재 행정구역을 관할
(용산동6가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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