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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로제2동은 원효로3·4가, 산천동, 청암동, 신창동의 5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효로3가는 용호로를 끼고 원효로 좌,우에 위치하며 구용산이라고 칭하는 지역으로 일제 초기에는 원효로2가와 동일하며 1914. 4.1 (경기도고시 제7호)일 원정 3정목으로 칭하며 1926. 10. 1일 원정 2정목 대신 원효로2가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정보통신공무원 교육원, 전기통신공사 연구소 및 품질보증단과 원효로3가 남쪽을 지나는 용호로변은 용산전자상가가 형성되어 차량과 인파로 붐비고 있음

원효로4가는 옛날에는 용산항으로 유명하였고, 조선초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영조27년에는 서부 용산방 등의 일부지역 이였으나, 일제가 1911. 4.1 (경기도령 제3호)일 경성부 용산면이라 하고 1914. 10. 1일 원효로4가로 고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문화유산으로 심원정과, 600년이상의 느티나무 보호수등8주, 성심여고안에 있는 함벽정 등이 있는곳임.

산천동은 일제때 산수정을 광복후에 개정하면서 제정한 곳으로 명칭의 유래 미상으로 영조 27년에 원효로4가와 같이 한성부 서부 용산방의 지역였으나 한.일 합방후 1911. 4. 1일(경기도령 제3호)에는 경성부 용산면이 되었고 이어서 1914. 4. 1일 (경기도고시 제7호) 에 경성부 산수정을 1943. 6. 10일(칙령 제485호)에 용산구에 속하고 광복직후 1946. 10. 1일 산수정을 1943. 6. 1일 산수정을 산천동으로 개칭 현재에 이름이 되었다.

청암동은 일제때 암근정을 광복후 개칭한 곳으로 그 명칭의 유래는 미상으로 조선초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으며, 영조27년에는 한성부 서부 용산방 도화동계로 칭하다가 갑오개혁을 거쳐 한.일 합방후 일제는 1911. 4. 일(경기도령 제3호)에 경성부 용산면으로 1943. 6. 10일(칙령 제 485호)에는 용산구로 광복직후 1946. 10. 1일 암근정이라는 일제식 명칭을 청암동으로 개칭 하였으며 문화유적으로는 조선시대 독서당이 있고 광복후 이승만 대통령 별장인 마포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현대식 빌라가 들어섰음.

신창동은 조선시대 신창이 있었기 때문에 신창이라고도 하였으며, 조선초 한성부의 성저십리에 속하였다가 영조 27년 한성부 서부 용산방 등으로 불리다가 갑오개혁을 거쳐 한일합방으로 일제가 자의로 1911. 4. 1(경기도령제3호) 경성부 용산면으로 칭하고,이어서 1914. 4. 1일(경기도 고시 제7호) 경성부 청수정으로 1943. 6. 10일(칙령 제 485호) 용산구에 속하다가 광복직후인 1946. 10 . 1일 일제식 동명인 청수정을 신창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