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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예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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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용

용산은 오랫동안 ‘잠자는 용’이었습니다. 한 세기 넘도록 용산의 심장부를 외국군의 주둔지로 내주어야 했고, 그 옆을 지나는 고속철도선으로 인해 지역이 동서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서울의 대표적 명소인 남산과 한강을 남북으로 끼고 있는 ‘경관상 중요한 지역’이기에 번듯한 건물 하나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서울의 핵심지라는 점이 개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제 용산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미군으로부터 돌려받은 땅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능가하는 서울의 허파로 기능할 것이며,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생명의 숲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얼마 전 그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미군들 사이에서 ‘캠프 서빙고’라 불리던 장교숙소 단지를 역사 관광지로 재구성하여 시민에게 개방한 것입니다.  
용산은 서울에서 가장 늦게 개발되는 곳이지만 서울을 명실상부한 세계도시로 비약케 할 거점이자 국제 관문으로 성장 중입니다. 그 세기적인 변화의 심장은 용산역 주변입니다. 철도차량을 정비하던 넓은 부지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업무단지를 건설한다는 큰 그림 아래 하나씩 하나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곳은 경제·문화·관광의 새 흐름을 주도하는 기지가 될 것입니다. 수도권을 아우르는 전철노선,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선이 그 기회를 증폭시켜줄 것이며, 인천국제공항과 직결되는 서울역의 공항철도선은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종로·강남·여의도로 연결되는 중심도로 주변도 새로운 미래경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로변의 노후 주택과 상가건물, 강변의 낡은 아파트들은 미래에게 자리를 내주었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창의적인 방식의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것입니다. 발전이란 명분 아래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00년 용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건물들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시설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용산은 10여 년 전 용산역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을 가슴에 새긴 채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한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비 완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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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힘이 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들 말합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생겨난 건물과 거리도 세월이 흘러 쓰임을 다하면 새로운 공간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이야기들은 변화의 기록이 되고 시대의 증언이 됩니다.
지금 한창 세기적인 혁신을 맞고 있는 곳은 용산역 주변입니다. 혁신을 완수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미 용산역 주변으로 들어선 고층빌딩들을 둘러보면 10여 년 전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기보다는 역전마천루(驛前摩天樓)입니다. 특히 관광버스터미널 상가와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자리에 컨벤션센터를 갖춘 대형 호텔과 업무시설이 들어서면서 국제도시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을 실어 나르던 그 기억이 앞으로 세계 각국의 시선과 발길을 끌어 모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이에 발맞춰 강변에서도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리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동작대교 못 미친 지점에 우뚝 선 초고층 아파트는 강변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서 한강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한때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로 산업화 시대를 선도하던 삼각지의 입체교차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4호선 삼각지역이 있는 사거리를 여전히 ‘삼각지 로터리’라 부릅니다.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뿐인가요. 누군가는 한남동 언덕의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뮤지컬 공연장으로 향하면서 운전면허시험을 보던 때를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노들섬을 거닐면서 옛 모래사장의 추억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경의선숲길을 걸으면서 철로 위에 쇠붙이를 올려 자석을 만들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것입니다. 빛바랜 사진 같은 기억을 꺼내어 의미를 되새길 때 그 기억은 장소의 역사가 되고, 나아가 미래의 문화유산이 됩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역사 문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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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문화다

용산공원과 효창공원은 용산을 대표하는 공원입니다. 용산공원이 주권 회복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곳이라면 효창공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8인이 잠들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근현대사를 거치며 외세로 인한 부침이 컸던 용산으로서는 자주 독립을 위해 순국한 분들의 뜻과 정신을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의 강국 대한민국을 소망했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 용산은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더불어 진정한 문화의 힘은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 비롯된다는 신념 아래 곳곳에 숨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이태원 어느 묘지에 안치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고 이봉창 의사의 고향인 효창동에 기념관을 건립한 최근의 사업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용산은 서울에서 가장 세계적인 지역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만날 수 있고 세계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성 넘치는 특화거리가 많은 이태원이나 한남동에 가면 ‘서울 속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주변에 많은 대사관과 외국인 주거지가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된 것이지만, 불운한 역사의 영향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했기 때문에 어떤 도시와도 비슷하지 않은 다문화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0년 세월의 지층을 간직하고 있는 후암동 해방촌은 각별한 문화마을입니다. 
옛 일본인들이 살았던 문화주택과 일본 신사로 오르는 108계단이 남아 있고, 피난민들이 낮은 지붕 아래 재봉틀을 돌리던 시절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그 골목마다 젊은 예술가들이 깃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공동체 마을로 거듭났습니다. 그 밖에도 용산에는 다양한 빛깔의 문화를 입은 역사적 장소가 많습니다. 남산 위의 서울타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변화하는 용산의 풍경을 따뜻한 불빛으로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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